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고,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은 작은 선물을 받는 것처럼 설렜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 비운 택배 상자와 비닐을 분리배출하다가 문득 손이 멈췄습니다.
이 상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그전까지 저는 택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택배를 매일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사람의 하루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 택배 노동자분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이 채 밝기도 전에 시작되는 하루.
산처럼 쌓인 상자를 분류하고, 비좁은 골목과 끝없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비를 맞으며 뛰고, 눈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걷고,
점심은 컵라면 하나로 때우거나 아예 거르고,
배송을 마친 뒤에도 또 다른 배송과 수거를 이어가는 하루.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이미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다 한 단어를 만났습니다.
'과로사(過勞死)'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죽음을 뜻하는 말.
그리고 해외에서는 이 단어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콰로사(Kwarosa)'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일해서 죽는다는 사실도 마음 아팠지만,
그 현실이 하나의 단어가 되어 세계에 알려질 만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를 묵묵히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을까.
그 마음에서 이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을 〈콰로맨〉이라고 붙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콰로사'라는 무거운 단어에서 출발했지만,
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도 다시 일어나 도시를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일 선물을 싣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약을 전하고,
아이의 운동화를, 부모님의 건강식품을,
우리가 기다리는 평범한 행복을 매일같이 문 앞까지 이어주는 사람.
저에게 그들은 영화 속 슈퍼히어로보다 더 현실적인 영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서 '콰로사'는 '콰로맨'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누군가를 동정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영웅으로 과장하기 위해 만든 노래도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 버렸던 한 사람의 하루를,
잠시 함께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택배를 기다리는 설렘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문 앞에 놓인 상자를 볼 때마다,
그 상자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흘렸을 누군가의 땀과 시간,
그리고 오늘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달리고 있을
한 사람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노래를 만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부디 늘 안전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연결하기 위해 길 위를 달리고 있는
모든 배송·배달 노동자 여러분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콰로맨〉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작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 MA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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